철음식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근데 이젠 이르게 나오는 채소나 과일이 반갑기보단 이래도 되나 하는 맘이
앞선다.
느리게 살기란 말의 미덕이 천천히란 말이 아닐테다. 그 과정과 시기가 적당
하게 맞게 살기란 말이 함유된 것은 아닌지 우려섞인 맘일테다.
남보다 앞서서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요즘엔 누구보다 앞
서 맛보는 계절의 맛이 과연 진정한 맛으로 다가올지....
늦여름 이젠 오이넝쿨에서 미처 따먹지 못하고 늙어버린 오이가 누렇게 변하
고 씨가 굵어져 씨는 발라내고 두꺼워진 껍질은 벗겨내고 오이살만 착착 썰
어 무쳐낸 한김 식은 것 같은 노각의 맛이 이 계절에 어울리기나 한 건지...
많이 아쉬운대로 미국에서 해마다 찾아오시는 환우분이 노각을 좋아하시니
집어는 든다.
일부러 늙혀서 생산해낸 매끈한 노각을 집으며 잠시 이런 생각들이 들었었
다.
노각은 껍질을 벗겨내고 씨는 숟가락으로 파서 물에 깨끗이 씻고 길이대로
채를 썬다.
상에 내기 직전에 다진 파와 다진 마늘, 액젓, 식초, 고춧가루, 원당, 오미자
효소액, 깨소금, 참기름, 소금 등으로 간을 하여 조물조물 버무려 낸다.
아쉬운대로 맛있게 드셔주는 환우분들 덕에 내 맘의 근심이 사라진다.